식탁 위에서 ‘산성’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불안의 형태로 등장한다. 우유와 치즈, 요거트 같은 유제품을 떠올리면 곧바로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이게 몸을 산성화시켜서 칼슘을 오히려 빼앗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다. 이 논란은 단순한 영양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느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같은 식품을 두고도 누군가는 보약처럼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독처럼 경계한다. 이 글은 산성 식품 논란과 칼슘 흡수율, 그리고 체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개인차의 실체를 차분히 풀어보려는 시도다.
산성 식품 논란, 어디서 시작되었나
‘산성 음식은 뼈를 녹인다’는 믿음의 탄생
이 주장은 오래된 생리학 실험에서 출발한다. 단백질이 많은 식사를 하면 소변으로 칼슘 배출이 늘어난다는 관찰이 있었고, 이것이 “몸이 산성화되면서 뼈의 칼슘을 끌어다 중화한다”는 해석으로 번졌다. 과학적 맥락은 사라지고, 메시지만 단순화되었다. 사람들은 복잡한 생리 대신 직관적인 공포를 기억한다.
하지만 실제 인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혈액의 pH는 극도로 정교하게 조절되며, 음식 하나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산성 식품을 먹었다고 해서 몸 전체가 산성화된다는 발상은 실험실의 단면을 일상의 진실로 오해한 결과다. 여기서부터 논란은 과학이 아니라 서사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산성·알칼리성 구분의 함정
식품의 산성·알칼리성은 입안의 맛이나 위산과 무관하다. 이는 체내 대사 후 남는 잔여물의 성격을 기준으로 나뉜다. 이 기준은 교육용 개념으로는 유용하지만, 건강 판단의 절대 잣대가 되기엔 거칠다. 문제는 이 구분이 마치 선악처럼 소비된다는 데 있다.
유제품은 종종 ‘산성 식품’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동시에 칼슘과 단백질의 주요 공급원이다. 한 손으로는 뼈 건강에 좋다고 말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뼈를 해친다고 경고하는 이 모순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결국 구분법 자체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문제다.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
이 논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우유를 마시고 속이 편안해지고, 어떤 이는 더부룩함을 느낀다. 경험은 곧 신념이 된다. 여기에 “산성 체질”, “알칼리 체질” 같은 언어가 덧붙여지며 논란은 더욱 강화된다.
과학은 평균을 말하지만, 사람은 자기 몸 하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 간극이 바로 산성 식품 논란이 계속 재생산되는 배경이다.
요약정리: 산성 식품 논란은 초기 실험의 단순화된 해석과 개인적 경험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과학과 심리의 혼합물이다.
칼슘 흡수율의 진짜 변수
칼슘은 얼마나 먹느냐보다 어떻게 흡수되느냐
칼슘은 섭취량보다 흡수율이 중요하다. 같은 양을 먹어도 누구는 뼈로 보내고, 누구는 그냥 흘려보낸다. 흡수율은 위산 분비, 비타민 D 상태, 장 건강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 과정은 음식의 ‘산성·알칼리성’보다 훨씬 결정적이다.
유제품 속 칼슘은 흡수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이는 유당과 단백질이 칼슘의 용해와 이동을 돕기 때문이다. 즉, 이론적으로는 뼈에 불리하기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단백질과 칼슘 배출의 관계 재해석
단백질 섭취가 칼슘 배출을 늘린다는 사실은 맞다. 그러나 동시에 단백질은 장에서 칼슘 흡수를 촉진한다. 배출만 보고 흡수를 무시하면 결론은 왜곡된다. 최근 연구들은 단백질 섭취가 충분할수록 오히려 골밀도가 유지되거나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즉, 칼슘의 출입을 함께 봐야 한다. 출구만 확대해서는 전체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산성 식품 논란은 과학적 설득력을 잃기 시작한다.
칼슘 흡수의 숨은 조력자들
비타민 D, 마그네슘, 장내 미생물은 칼슘 흡수의 숨은 변수다. 특히 장 건강이 나쁜 상태에서는 어떤 칼슘 식품도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유제품이 문제라기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몸의 환경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결국 칼슘 흡수는 단일 식품의 성질이 아니라, 전반적인 생리적 맥락의 결과다.
요약정리: 칼슘 흡수율은 산성 여부보다 장 건강, 비타민 D, 단백질 섭취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체질이라는 말의 과학적 실체
체질은 미신인가, 개인차의 다른 이름인가
‘체질’이라는 단어는 과학자에게는 애매하지만, 일상에서는 매우 현실적이다. 이는 유전자, 효소 활성, 장내 미생물 구성의 차이를 포괄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체질이 설명이 아니라 결론처럼 쓰일 때다.
우유를 못 마시는 사람에게 체질은 핑계가 아니라 경험의 요약이다. 유당 분해 효소가 부족하면 실제로 불편함이 생긴다. 이 차이를 무시한 채 “모두에게 좋다”거나 “모두에게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더 비과학적이다.
유당불내증과 산성 논란의 혼동
유제품을 먹고 속이 불편한 경험은 종종 산성 식품 논란과 연결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원인은 유당불내증이다. 이는 산성화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소화되지 않은 유당이 장에서 발효되며 가스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 혼동은 유제품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키운다. 원인을 잘못 짚으면 해결책도 엉뚱해진다. 산성 논란이 체질 문제와 뒤섞이는 지점이다.
장내 미생물과 유제품 반응
최근 주목받는 것은 장내 미생물이다. 같은 유제품이라도 장내 환경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유익균의 먹이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염증 반응을 유발한다.
체질이란 결국 고정된 운명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상태에 가깝다. 이 관점에서 보면 유제품의 득과 실은 조정 가능한 문제로 바뀐다.
요약정리: 체질은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 유전자, 소화 능력, 장내 미생물 차이를 반영한 개인차의 표현이다.
유제품 섭취의 득, 누구에게 해당되는가
성장기와 노년기의 이점
성장기 청소년과 노년층에게 유제품은 중요한 칼슘·단백질 공급원이다. 특히 골밀도 형성이 활발하거나 유지가 필요한 시기에는 효율적인 선택이 된다. 씹기 쉽고 흡수율이 높은 점도 장점이다.
이들에게 유제품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결핍 위험을 키운다. 산성 논란만 보고 식품을 제거할 때 생기는 역설이다.
운동량이 많은 사람의 경우
근력 운동이나 고강도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단백질과 칼슘은 회복과 적응에 필수적이다. 유제품은 이 두 요소를 동시에 제공한다. 운동 후 요거트나 우유가 자주 권장되는 이유다.
이 경우 단백질로 인한 칼슘 배출보다 흡수와 이용의 이득이 더 크게 작용한다. 맥락을 무시한 일반화는 여기서도 위험하다.
발효 유제품의 추가 이점
요거트나 치즈 같은 발효 유제품은 유당이 줄어들고, 장내 미생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에게도 하나의 대안이 된다.
모든 유제품을 같은 선상에 놓고 평가하는 것은 과도한 단순화다.
요약정리: 유제품의 득은 연령, 활동량, 제품 형태에 따라 달라지며, 특정 집단에서는 분명한 이점을 가진다.
유제품 섭취의 실, 누구에게 주의가 필요한가
소화기 민감성이 높은 경우
과민성 장 증후군이나 심한 유당불내증이 있는 경우, 유제품은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다. 이때 문제는 칼슘이 아니라 소화 과정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스트레스만 누적된다.
이런 사람에게 무리한 섭취는 오히려 건강 행동을 방해한다. 선택의 기준은 이론보다 반응이다.
염증성 질환과의 관계
일부 사람들은 유제품 섭취 후 염증 반응이 악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개인의 면역 반응과 관련될 수 있다. 아직 모든 기전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경험적 배제도 때로는 합리적이다.
중요한 것은 대체 식품을 통해 칼슘과 단백질을 보충하는 전략이다. 배제는 곧 결핍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산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
산성 식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제품을 두려워하는 것은 실보다 해가 더 크다. 이 집착은 식단을 불필요하게 경직시킨다. 건강은 균형의 문제이지, 단어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산성 논란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순간, 이미 목적을 잃은 것이다.
요약정리: 유제품의 실은 특정 체질과 소화·면역 반응에서 나타나며, 산성 논란 자체보다 개인 반응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마감부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산성 식품 논란은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다. 칼슘 흡수율은 단순한 산성·알칼리성 구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유제품은 어떤 이에게는 득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실이 된다. 중요한 것은 어느 편의 주장에 서느냐가 아니라, 자기 몸의 반응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건강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태도는 맹신도 배척도 아닌, 조심스러운 관찰과 균형 잡힌 판단이다.





